마감 택시록

5월 22일 택시

Melodybae 2024. 9. 23. 17:57

회사에 퇴사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이런 날에도 야근을 하고 택시를 탔다. 나는 진지하게 밝힌 퇴사 의사를 장난스럽게 넘겨 버리는 상사의 반응에 다소 당황하기도 했다. 따로 면담을 신청해 회의실에서 얘기하면 진진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 아닌가? '얼마나 더 진진하게 퇴사를 이야기해야지 퇴사를 퇴사로 받아들여줄까' 생각하며 새벽 2시가 다 돼서 마감 택시를 불렀다.

보통 마감 택시에 오르면 기사님들이 이런 저런 말들을 많이 붙인다. 내가 느끼기엔 새벽에 운전하는 기사님이 졸리고 피곤해서도 있지만 이 시간까지 일하다 탄 지친 손님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오늘 마감 택시 기사님은 여느 기사님들과 달랐다. 택시에 올랐을 때 '맞죠?' 한 마디 외에 아무 얘기도 하지 않으셨다.

마감 택시록을 쓰고 어떤 에피소드가 생길지 몰라 일단 달리는 창밖을 찍는다. 별다른 에피소드가 없으면 지우면 되니까. 습관적으로 창밖 사진을 찍는 나를 백미러로 보신 기사님이 한 마다 건네셨다. 

"참 이 시간 까지 일하는 사람 많죠? 다들 좀 쉬엄쉬엄 하지. 아가씨도 참 늦게까지 일했네요."

"그러니까요. 그래서 이제 그만하려고요. 기사님 저 오늘 퇴사하겠다고 얘기했어요."

"축하해요"

아직 아무에게도 받아들여지지도 않은 나의 퇴사 소식을 첫 번째로 전한 사람이 택시 기사님이 될지는 몰랐다. 한 번 보고 말 사람, 다시 봐도 다시 본 사이일지 모르는 사람에게 전하는 퇴사. 진심인지 아닌지도 모를 무뚝뚝한 한 마디지만 가끔은 가장 중요한 일을, 가장 비밀스러운 일을 모르는 사람에게 털어놓는 것은 참 좋은 일 같다.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받아들여진 나의 퇴사가 있어 오늘은 조금 더 편하게 잠들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