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세 번 고민한다. "항상 재밌어서 엔터에 있어요"라고 말하던 내가 이제 이 일이 재밌지 않구나 느낀 건 작년 11월이었다. 회사에서 맡고 있던 미국 오디션 파이널이 있는 날.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서도 결혼식이 아니라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행진 마지막에 신랑의 얼굴보다 환하게 내 얼굴을 비추는 노트북 불빛 위로 미안하다고 하며 식장을 빠져나와 계속 일을 했다.
친구의 결혼식을 빠져 나왔을 때. 바깥의 칼바람을 잊지 못한다. 그 바람 사이에 끊이지 않는 전화, 슬렉 때문에 걸음걸음마다 길을 멈췄고, 결국 하객룩에 신지 않던 힐을 신고 길거리에 서서 일을 했다. 겨우 지하철에 왔지만 다시 노트북을 킬 수밖에 없었다. 자기 밥그릇 챙기기만 바쁜 실장과 이 프로젝트를 자기의 성과로 가져가고 싶은 기업팀의 실장 사이에 낀 나는 몇 번의 열차를 보냈을까? 지하철 역사에서 3시간을 보냈다. 발은 얼어 버린 채 부르텄고, 극심한 현타와 자괴감에 사로잡혀 겨우 지하철을 타며 첫 번째 고민을 했다. 아, 퇴사할까?
두 번째 고민은 멀지 않은 12월 31일에 찾아왔다. 매년 가족과 함께 드리는 송구 영신 예배를 드린다. 다행히 담당하던 가수가 가요대제전 1부에 나와서 빠르게 자료를 정리하고 컨펌을 보내고 가족과 함께 교회로 갔다. 예배를 한창 드리고 있을 때 팀장의 슬렉이 왔다. 뭐가 이상한지는 자기도 모른 채 이상하다고만 반복하고 있는 팀장. 그러면서 커뮤니티에서 무대 부정이슈로 화제가 되고 있는 부분을 홍보 포인트로 잡자는 말도 안 되는 소리. 몸은 가족과 함께 교회였지만 예배를 드리지는 못했다. 그렇게 계속되는 실랑이와 수정의 연속, 새해 카운트다운이 시작됐고 양옆에 있던 가족들이 해피 뉴이어를 외칠 때 결국 눈물이 터졌다.
12년이란 세월동안 내가 일을 하는 모습을 본 부모님도 적잖게 놀랐다. 나는 그렇게 2024년 1월 1일을 울면서 맞이했다. 그래서 두 번째 고민을 했다. 진짜 퇴사할까?
역시! 마지막 고민을 하고 퇴사를 결심은 새해가 시작하고 머지않아 찾아왔다. 담당하던 아티스트를 활동을 잘 마무리하고 이제 쉴 수 있을 것 같다 생각한 4월. 어느 날 갑자기 회사가 이상한 것들을 요구했다. 어떠한 이유도 가르쳐 주지 않은 채 개인 카톡, 전화 녹음, 메일, 슬렉 캡처를 달라고 했다. 러프하게 설명해 주는 건 해명, 소명 자료의 용도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추후에 있을 회사 경영권 싸움을 위한 증거였다. 제대로 설명을 하지 않고 한 개인 그것도 일개 직원을 사찰하는 것 같은 회사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개인의 인권을 보호받지 못함을 직책자에게 항의하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만 자료를 달라는 무능한 실장이나 총괄하는 C레벨의 행동에 결심했다.
아, 떠나자.
이 더럽고 지긋지긋한 연예인 뒤치다꺼리 그만해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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