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곡은 버즈다.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을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했지만 내가 부르는 버전은 정은지의 버전이다. 정은지의 세 번째 솔로 앨범이자 리메이크 앨범인 'log'. 이 앨범에 수록된 곡 대부분을 좋아한다. 앞으로 코노 리스트에 등장할지도. 버즈가 부를 때는 관심도 없다가 정은지가 부르며 관심을 갖게 됐다. 그래서 이때까지 '너에게로 떠나는 여행'이 제목인지 알았다. 새삼 놀랐다.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이라니, 보통 여행은 '너'에게로 떠나지 않나?
하지만 제목과 가사를 조금만 곱씹어 보면 금방 알 수있다. 익숙한 것들 챙겨 나의 감정에 집중해 떠난 여행 끝에는 결국 나를 사랑하고, 앞으로를 살아갈 힘을 줄 수 있는 시간을 채워 돌아온다는 것을. 그 당시에는 몰랐겠지만 나에게도 그런 여행이 정말 많았다는 것을.
마이크를 잡고 열창하다 보면 가끔 그럼 여행의 파편이 스쳐 지나간다. 고3이 되는 게 무서워서 고2 겨울 방학에 말도 없이 혼자 떠나 버렸던 대구(거의 가출이었지). 사회 초년생에 혼자 떠난 첫 해외여행 홍콩. 4년을 다닌 첫 회사를 그만두고 퇴직금을 싸들고 해외 한 달 살기를 하러 떠난 미국. 코로나 시절 여행이 고파서 계절마다 혼자 떠난 제주도. 이런 여러 나에게로 떠난 여행들의 조각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아니 만들어 가고 있다.
원곡이 락그룹인 버즈의 노래 그런지 모르지만 음정이 굉장히 높다. 정은지 역시 아이돌 여성 보컬로서는 탑급. 음정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싶어 소리를 내지르는 게 대부분이겠지만 사실은 가사를 읊조리며 지금 당장 떠나고 싶은 마음에 조금이나마 위안을 주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낡은 하모니카 손에 익은 기타 your melody" 익숙한 것을 가지고, "저 푸른바다 끝까지 말을 달리면 소금 같은 별이 떠있고, 쿨럭이 자동차를 타고서 꿈의 날개로 구름 속을 산책할 거야." 낯선 곳으로 떠나는 용기. "어린 왕자 your melody 찾아 떠날래" 꿈을 찾아 떠나지만 그 결과가 어떻든 "나는 사랑보다 좋은 추억 알게 될 거야. 텀블러 한잔에 널 털어 넘기고 이젠 나를 좀 더 사랑할 거야" 나와 마주해 다시 나아가는 희망.
노래는 알려준다.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은 결코 쉬운 여행이 아니라고. 이 노래를 수도 없이 부른 나는 어디까지 왔을까 고민해 본다. 나에게 익숙한 것들이 뭔지, 가고 싶고 찾고 싶은 게 있다는 건 알고 있는지, 어떤 과정과 결과가 나오든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웃으며 수용할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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