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물어본다. 회사 그만두고 뭐 하고 있냐고. 그럼 기쁜 것도 아니고 힘든 것도 아닌 듯 무심히 이야기한다. “결혼 준비하고 있어요” 그렇게 지난 주 금요일 촬영가봉 드레스를 보러 갔다.
결혼 준비를 하다 보면 정말 많은 정보를 접하게 되면서 이것도 해야 할 것 같고, 저것도 해야 할 것 같고.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지갑을 연다. 사회 풍조도 그렇다. 결혼 때 아니면 이렇게 돈 못 써보니까 하고 싶은 거 다하라고. 최첨단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알고리즘은 또 어찌나 대단한지 검색 조금만 하면 수도 없이 뜨는 웨딩 박람회, 결혼 정보, 이미 결혼한 사람들의 인스타그램. 그렇게 무한 스크롤을 내리다 보면 “결혼이니까”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모든 것이 당연해지고 있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싫었던 건 지갑이 무한으로 열리는 자본주의 시장에 뛰어들어야 하는 기분이었다. 인륜지대사, 축복해야 할 일에 이렇게 돈을 퍼부어서 축복받아야 하는 사실이 씁쓸한 것 같기도 했다.
나도 처음에는 “그렇지 그렇지” 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하고 싶은 것들에 돈을 쓸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이 정도 모았으니 이 정도는 해도 되겠지 싶었다. 그렇게 뛰어든 결혼 시장은 상상 이상이었다. 난 그냥 한복 드레스를 입고, 한옥에서 결혼하고 싶다 하나인데 한복 드레스는 종류도 없는데 드레스 보다 더 비싸기만 하고 수용 인원을 맞추려면 대관비가 3-4000만 원이고 아무리 물가가 올랐어도 한옥 피로연은 대부분 코스요리라 17-18만 원을 하는 이런 곳. 돈이 있어도 갑자기 쓰기 아까워졌다. 단 몇 시간을 위해 이렇게 까지? 대단한 세기의 결혼식을 할 것도 아닌데 이렇게 쓰는 게 맞나 싶었다. 그런데 더 열받는 것은 이런 곳도 인기가 많아 내가 원하는 날짜에는 결혼할 수도 없다는 게 단점. 식장에 맞춰서 결혼을 해야 한다. 어떤 곳은 티켓팅에 참전하지 않으면 상담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2시간에 작게는 5천만 원에서 8천만 원을 쏟는 이 결혼 맞나?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준비하던 결혼을 잠시 멈췄다. 남자친구와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리한테 결혼의 의미가 무엇이고 우리가 더 중요하다 생각하는 가치가 뭔지 점검해 나가기 시작했다. 함께 있어서 좋기 때문에 결혼하는 우리. 가장 우선순위를 세운 건 우리가 함께 있을 시간에 더 투자하자. 그러고 나서 우리를 축복하러 와주시는 분들을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서도 참 걸리는 말이 있었으니 ‘축복’. 그럼 우리가 실제적으로 축복을 받는 것을 생각해 보면 가장 먼저 된 분은 하나님이었다.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가정을 꾸려가기로 약속하는 거,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됨을 맹세하는 것이 우리에게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심지어 교회에서 만난 커플이 이걸 이제야 인지하다니. 한심하다. 그래서 상담 다니며 알아보던 모든 웨딩홀을 뒤로하고 교회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예배로 하나님 앞에 먼저 서약하기로 했다. 밥은 좀 맛없고 예배 예식이 조금 불편할지라도 우리가 삶을 살면서 좋아했던 사람만 부르는 파티니까 기꺼이 축하해 주는 마음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에.
결혼 준비로 초반에 골머리를 앓다가 가치와 기준을 명확히 하고 나니 모든 게 달라졌다. 준비는 재밌어졌고 속도는 빨라졌으며 색깔은 더욱 명확해졌다. 역시 모든 일의 시작은 남이 아니라 우리로부터 시작돼야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인스타그램의 쏟아지는 수많은 정보가 아니라 누가 이런 거 했대 타인으로부터 오는 말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 그것을 써 내려가는 게 결혼인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결혼은 그렇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 이야기를 한 페이지 씩 써 내려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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