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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5일 택시

마감 택시록

by Melodybae 2024. 3. 30.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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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택시록 중에 오늘 택시가 가장 늦은 시간이길 바라며 마감택시를 잡았다. 새벽 4시 12분. 이때동안 야근을 하는 프로젝트가 드디어 시작했다. 시작해서 끝남은 아니고 조금? 나아진다. 진짜 끝은 4주 후.

 

오늘 아침 비가 안 올 때 출근해 하루 종일 갇혀 있다가 택시를 나오니 비가 오고 있었다. 꽤 많이.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빨리 집에 가고 싶을 뿐이었다. 1층에 내려와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기 멀리서 오는 택시 한 대. 뒤이어 오는 택시 두 대.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모르게  첫 번째 택시로 거의 돌진했다.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뒷좌석 문을 열고 앉아 인사를 하며 젖은 머리를 털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인사를 하고 기사님용 카카오 네비 앱으로 눈을 돌렸다. "청솔 빌리지"를 힘차게 누르며 출발하시는 기사님. 네비 안내 카운트가 시작되고 있었다. 3.2.1.

 

"급한 마음에 기사님 이거 홍제동 가는 택시 아니에요?"

"오! 손님 아니에요! 얼른 얼른 내리세요!"
"오! 기사님 죄송해요!" 탁-

 

일단 내렸다. 내리자 마자 1층에서 같이 택시를 기다리고 있던 다른 팀 분이 비를 맞으며 '이 사람 뭐지'하는 표정으로 서 계셨다. 다시 한번 죄송하다 인사하고, 그제야 비를 맞으며 택시 번호를 확인했다. 나의 마감택시는 두 번째 들어오던 택시였다. 다시 택시를 타서 어이없이 웃으며 기사님께 인사를 드렸다. 기사님도 이 상황이 재밌었나 보다. 

 

 

"아유~ 이상한 손님 태우고 갈뻔 했어요. 집에 빨리 가고 싶으셨나 봐요. 후다닥 타시던데"

 

기사님의 장난스러운 한 마디에 현웃이 터지고 말았다. 그간 준비해 왔던 것을 처음 선보인 오늘. 성공이다 실패다 할 수 없는 행사로 끝났다. 내가 결정한 것들을 사람들이 좋아해 줬지만, 내가 결정하지 않을 것들 때문에 잘못된 결과들이 나오는 게 너무 짜증하고 열받고 힘들었던 오늘. 권력과 시간 없음 때문에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못했던 것들의 책임을 내가 져야 하는 상황이 분노케 했던 오늘. '내 선택은 옳았는데 당신들 때문에 이렇게 됐어'를 되뇌이며 자기 체면, 정신 승리를 하던 오늘.

 

내가 선택해 탄 택시지만 나의 택시가 아니었던 헤프닝은 나도 언제든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자기 체면이나 정신 승리가 아니라 '그 사람들도 마치 내가 선택해서 탄 첫 번째 택시 같이 실수 일거야. 그냥 털어내'라며 타인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사건이었다. 다행이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저주하는 마음으로 마무리하는 하루가 아닌 이해하며 마감할 수 있는 하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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