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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프티 피플

빌려 읽은 책

by Melodybae 2024. 6. 7.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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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작가를 좋아해 그녀의 SF 소설부터 에세이까지 모두 읽었다. 제일 좋아하는 책을 고르라면 고민 없이 피프티 피플이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아니다. 다른 책은 다 가지고 있으면서 참 아이러니 하지. 도서관에서 앉아서 단숨에 다 읽은 게 첫 번째. 서점에서 친구를 기다리며 읽었던 게 두 번째.

 

청민의 집에 갔다가 오래만에  피프피 피플을 발견했다. 좋아하는 사람 집에서 좋아하는 책을 발견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의 유대를 더욱 곤고히 만들어 주는 계기가 된다. 책을 꺼내자마자 "너무 재밌지"라고 이야기한 청민. 이 책을 읽었다고 말한 적 없지만 이 친구는 알고 있었다. 내가 이 책을 읽었을 거라는 걸. 기분 좋은 간파의 시선. 그렇게 책을 빌려왔다.

"사람, 어떻게 만날지 모른다" 피프티 피플을 읽을 때마다 되새기는 말이다. 사람 관계 속에서 만남과 이별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피프티 피플의 챕터는 병원 사람들, 환자들, 환자의 주변인들 50명의 이야기를 다룬다. 처음에는 스토리가 재밌고 궁금해서 빨리 읽기에 바빴다. 두 번째 읽을 때는 내가 이 인물의 상황이면 어땠을까 상상하며 읽었다. 세 번째 책을 읽으며 한 3명쯤 읽었을까? 인물 관계도를 그려보고 싶어졌다. 그리며 읽다 보니 속도가 느려졌지만 재밌는 과정이었다. 아파서 오는 환자,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 의사와 환자의 가족들, 병원의 운영과 환경을 책임지는 사람들의 이야기. 한 공간인 듯 아닌 곳 병원에서 만난 사람들이 화재가 발생한 영화관에서 서로의 삶을 지켜주기 위해 힘쓰는 이야기. 참 따뜻하다.

 

피프티 피플의 재밌는 또 하나의 포인트. 각 챕터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큰 비중이 없는 캐릭터라도 모두 이름을 부여 받았다. 어떤 소설과 드라마에는 '행인 1', '사람'이라고 정의하는 지나가는 인물까지도 이름이 있다. '병원이란 공간 안에서 어떻게 이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려나' 싶다. 하나도 인물을 허투루 쓰지 않은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소설이다.

인물 관계도를 그리며 만약에 이 책으로 드라마를 만들고 나에게 배역을 하나 준다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을까 생각해 봤다. '이설아', '윤채원'이 되고 싶다. 이설아는 병원 경영에 영향력 있는 집에서 자라 정신과 의사가 됐다.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나 여유롭게 커서일까? 모난 사람들의 핀잔, 투정에도 끄떡없고, 자선 바자회라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나름의 선을 보여준다. '윤채원'은 실력으로 병원에서 인정받는다. 실력이 되다 보니 꼬인 구석이 하나 없이 할 말을 하며 산다. 실력이 좋아 여러 수술을 도맡아 하지만 사람 살리는 일이라 괜찮다는 마인드. 마치 '슬기로운 의사 생활'의 이익준 같다. 꼬인 구석이 없다 보니 모든 상황과 사람을 있는 그대로만 본다. 

 

이설아와 윤채원의 공통점은 '자기 할 말을 잘 한다'는 점이다. 이들의 배경과 실력보다 꼬인 구석 없이 자신의 할 말을 하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게 멋있어서 이들이 되고 싶었다. 삶의 한 구석이 꼬이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말과 행동으로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보여주고 드러내며 사는 삶. 그리고 그 삶이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행동하며 삶. 나도 그런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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