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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1일 택시

마감 택시록

by Melodybae 2024. 3. 12.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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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이 걸리던 문서를 드디어 끝냈다. 데뷔를 준비하며 가장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 TOP3에 꼽히는 일이기 때문에 아주 홀가분하게 퇴근했다. 더 기분 좋은 건 오늘은 우리 층 마지막 퇴근자가 아니란 사실. 후훗.


택시도 일찍 잡혀 미리 내려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제법 따뜻해진 날씨에 바람도 쐴겸 밖에서 기다렸다. 오늘 출근할 때 말고 처음으로 쐬는 바깥바람 기분이 좋았다. 멀리 잡힌 줄 알았던 택시의 이동 시간이 갑자기 줄어들었고, 후문 쪽으로 잘 찍혀 있고 아주 모든 게 완벽한 새벽이라 생각했다. 전화를 받기 전까지.

후문으로 들어오자 않고 있던 택시 기사님이 전화가 왔다. 내 목소리가 잘 안들렸는지 계속 "여보세요"를 외치며 불편하고 짜증이 역력한 기사님의 목소리. 기사님께 네비 찍힌 뒤로 오시면 된다고 얘기하던 중 화내는 소리로 "이 새끼 뭐야"라고 하셨다. 물론 나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니지만 기분이 무척 나빠서 나도 모르게 같이 쏘아붙였다 "네?" 기사님은 나의 반문을 듣씹 하신 채 "도로예요. 뒤로 가요? 뒤죠?"라고만 물었다. 네비 상에 찍힌 게 뒤쪽이고, 듣지도 않을 거면 왜 물어보나 생각이 들었다.  "네"라고 짧은 답변 이후 뒷골목으로 예약 택시가 줄줄이 들어왔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에 줄을 선 나의 택시.

 

뒷좌석 문을 열자마자 좋은 향기가 났다. 그 좋은 향기 위로 날카롭고 신경질적으로 들린 목소리는 "OO동 맞죠?" 별거 아닌 대화지만,  택시 안에 풍기는 향기와 상반된 기사님의 목소리가 이질적이라 기분을 더욱 나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유튜브를 틀어 놓고 운전하지만 보지는 않는 택시 기사님.  그냥 뭔가 조금씩 뒤틀림 가운데 운행 중인 모순적인 택시 같았다.

 

'손님인데 친절해야지'를 바라는 게 아니다. 그래도 처음 보는 사이잖아. 내가 뭔가 해를 끼친 게 아니잖아. 나는 집에 편히 가고, 기사님은 돈 벌고 서로 윈윈 하는 사이잖아. 그런데 왜 전혀 모르는 사람의 출처를 알 수 없는 기분 나쁨과 화를 내가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지난번에도 한 번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분노를 받아낸 적이 있다. 그때도 느껴지만 사람의 성품과 인격은 내가 아는 사람에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사람을 마주할 때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참 다행이다 생각 되는 건 오늘 마지막의 만난 사람이 나에게 이유 모를 짜증을 쏟아 냈다는 것. 마지막이 아니었으면 나는 또 이 분노를 오늘 만나는 누군가에게 기분으로 이야기로 전했을 테니까. 오늘 기분 나쁜 사람은 나 하나로 족하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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