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진짜 데뷔 준비 기간 동안 손에 꼽을 정도로 멘붕에 빠졌다. 일할 때만큼 파워 J라 일을 계획하고, 미리미리 정리해 놓는 편이다. 그렇게 미리 정리해 놓았던 부분이 모두 틀어져 새로 세팅하게 됐다. "죄송합니다"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말 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디자인, 외부 제작 일정, 예산의 문제. 내가 열심히 한다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
'진짜 나보고 어떡하라고' 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어떤 문제 하나만 더 터지면 진짜 눈물을 쏟을 것 같았다. 회사에서 우는 애들 제일 싫은데 말이지. 퇴근 시간을 막 넘긴 6시 42분부터 연쇄적으로 터지기 시작한 일은 9시 47분 마무리 됐다. 이제 진짜 나의 일을 시작하여할 때 신입사원이 다시 벙크를 터뜨렸고, 수습을 하고 나니 0시 10분.
일이 많~이 남았지만 진짜 너무 힘들고 지쳐서 퇴근을 했다. 당장이라도 회사를 탈출하고 싶었다. 미리 내려와 택시를 기다리는데, 도착한 나의 야근 택시는 모든 창문을 내리고 나에게로 달려왔다.
찬바람이 뒷좌석을 감싸고 있었다. 이유가 있을까 싶어서 기사님께 물어봤다. "기사님 창문을 닫아도 될까요?" 깜짝 놀란 기사님은 자기가 닫겠다며 모든 창문을 올렸다. 그렇게 10분 정도 갔을까? 기사님이 말을 걸었다. 택시록을 쓰기 시작한 이후 말을 먼저 건 기사님은 처음이었다.
"날씨가 많이 따뜻해졌죠? 내일은 15° 까지 올라간데요"
툭툭 내뱉는 노년의 퉁명스러운 말투지만, 말을 거는 사람을 향한 관심이 느껴졌다.
"아 정말요? 몰랐어요" 내일 날씨를 알려 주시는 기사님이 왠지 모르게 고마웠다. 최근에 날씨를 보며 산 적이 없었다. 매일 회사에만 있으니까 회사 안에서 체감 온도만 고려했다.
"이제 봄이네요 봄. 겨울 다 지나갔어요. 유독 눈이 많이 오는 겨울이 없는 것 같은 데 그렇죠?"
"네, 그랬던 것 같아요"
날씨에 관한 짧은 대화가 끝나고 문득 생각이 들었다. 심야시간, 창문을 열고 달리며 만끽하는 기사님의 입춘을 방해했나 싶어 조금 미안해졌다. 날 내려주고 다음 손님을 잡는 때까지 창문을 열고 마음껏 달리시기를. 기사님의 봄을 누리시기를 바라본다.